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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하면 척추 재활에 도움” 패럴림픽 출발은 상이군인 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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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2050@naver.com
작성자
최영호
작성일
18-05-07 16:50
아래 글은 중앙일보 채인택 국제전문기자가 평창패럴림픽을 앞두고 쓴 글인데 장애인스포츠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거 같아 가져왔습니다.
원문은 http://news.joins.com/article/22428888 이니 참고바랍니다.

◈ 장애인올림픽의 역사

2018 평창 겨울패럴림픽이 지난 9일 개막해 오는 18일까지 계속된다. 올해 대회에는 49개국에서 570여 명의 선수가 참가해 역대 최고가 될 전망이다. 지난달 열렸던 평창 겨울올림픽도 치열한 경쟁과 인간 승리의 연속이었지만, 겨울패럴림픽도 이에 못지않은 스포츠와 휴머니즘을 연출할 것으로 기대된다.

패럴림픽은 탄생 과정부터 인간의 의지를 보여줬다. 그 역사를 살펴보면 단순히 장애인 스포츠 행사를 넘어서서 차별과 편견을 극복하는, 살아있는 인류애의 드라마를 연출했다. 초기 올림픽에서 비장애인과 경쟁해 좋은 성과를 냈던 장애인 선수들도 패럴림픽의 밑거름이 됐다. 1904년 세인트루이스 올림픽에 미국 국가대표로 참가했던 체조선수 조지 아이저(1870~ 1919)가 첫 사례다. 아이저는 어려서 철도사고로 왼쪽 다리를 잃고 의족을 하고 다니면서 스포츠 클럽에서 체조선수로 활동했다. 그는 이 올림픽에서 평행봉, 도마, 25피트 로프 등반에서 금메달을, 안마와 4종 종합에서 은메달을, 철봉에서 동메달을 각각 땄다.

48년 런던 올림픽과 52년 헬싱키 올림픽에선 헝가리 사격선수 타카치 카롤리(1910~76)가 25m 속사권총에서 각각 금메달을 획득해 2연패를 했다. 사고로 오른팔이 심하게 손상돼 왼손밖에 쓸 수 없었던 타카치는 올림픽 2연패를 한 최초의 선수이기도 하다.

덴마크 승마선수 리스 하르텔(1921~2009)은 50년대 유럽의 승마 스타였다. 마장마술 분야에서 52년 헬싱키 올림픽과 56년 멜버른 올림픽(검역 때문에 승마 부문은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별도 개최)에서 연속 은메달을 땄다. 하르텔은 23살인 44년 임신 중 소아마비를 앓아 무릎 아래가 마비됐고 팔과 손도 자유롭지 못했다. 하지만 이런 장애도 그의 도전정신은 꺾지 못했다. 말 등에 오를 때 도움이 필요한 것을 제외하고는 다른 선수와 마찬가지로 혹독한 훈련을 쌓았다. 그 결과 47년 스칸디나비아 챔피언십에서 2위에 오른 데 이어 2개 올림픽에서 연속 은메달을 땄다. 올림픽 마장마술 분야는 원래 군 장교만 참가할 수 있었지만 52년 헬싱키 올림픽 때 문호를 개방했는데 하르텔은 여기서 첫 은메달을 땄다. 그해 스칸디나비아 챔피언십에선 우승했다. 장애, 여성, 비군인 출신 등 다양한 한계를 동시에 극복했다. 하르텔은 종목과 관계없이 올림픽 사상 최초로 남성과 직접 경쟁해 메달을 딴 첫 여성으로 기록된다.

장애인끼리 겨루는 스포츠 대회는 1948년 시작됐다. 이를 처음 조직해 패럴림픽의 창시자로 통하는 루트비히 구트만(1899~1980)이라는 인물부터 예사롭지 않다. 척추 전문의사인 구트만은 차별받고 박해받던 난민 출신이다. 유대계 독일인으로 나치 박해를 피해 39년 영국으로 망명했다. 그는 유대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 없이 자신을 받아준 새 조국 영국을 위해 헌신했다. 구트만은 44년 영국 남동부 버킹엄셔의 스토크맨더빌 병원에서 일하게 됐다. 이 병원이 그해 4월 세계 최초로 척추센터를 설립하면서 초대 센터장으로 초빙된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척추를 다쳐 휠체어에 의존하게 된 상이군인들의 재활치료를 위한 센터다.

구트만은 스포츠가 척추손상 환자의 육체적 재활은 물론 정신건강 증진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환자들에게 운동을 적극적으로 권했다. 그의 권고는 단순히 주기적으로 운동하라는 수준을 넘어섰다. 구트만은 환자들에게 ‘경쟁하는 스포츠 활동’을 강조했다. 경쟁과 목적의식이 있어야 비로소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게 된다는 생각에서였다. 이를 통해 육체도, 정신도 건강할 수 있다는 신념이다. 경쟁은 자연스럽게 스포츠 대회의 창설로 이어졌다.

구트만은 48년 런던올림픽 개막일인 6월 28일에 맞춰 며칠 동안 휠체어를 탄 영국 상이군인들끼리 서로 겨루는 스포츠 대회를 열었다. 제1회 스토크맨더빌 대회로 불리는 세계 최초의 장애인 스포츠 행사다. 남자 14명, 여자 2명이 참가한 소규모 행사였다.

영국 상이군인들끼리 겨룬 스토크맨더빌 대회는 미약하게 시작했지만 금세 창대하게 불꽃이 타올랐다. 52년 네덜란드 상이군인들이 동참하면서 국제대회가 됐다. 그 뒤 매년 열리다 제9회 행사를 60년 올림픽이 열린 이탈리아 로마에서 개최했다. 이 대회는 제1회 패럴림픽으로 기록된다. 23개국에서 400명이 참가했다. 이후 매년 열리는 스토크맨더빌 대회와 나란히 올림픽 자매행사로 4년마다 한 번씩 패럴림픽이 개최되고 있다.

초기 스토크맨더빌 대회는 척추 장애와 팔다리를 잃은 사지결핍 상이용사만을 대상으로 했지만 제1회 패럴림픽을 계기로 근육손상·팔다리결핍·운동장애·시각장애인·뇌성마비환자 등 광범위한 범위의 장애인에게 문호를 개방했다. 76년 스웨덴 외른셀드비크에서 열린 제1회 겨울패럴림픽이 열리면서 비로소 패럴림픽은 하계와 동계 대회를 모두 갖추게 됐다.

이와는 별도로 청각장애인들은 28년 파리대회부터 여름뎀플림픽을, 49년 오스트리아 시필드대회부터 겨울뎀플림픽을 각각 열고 있다. 발달장애인들도 별도로 68년 미국 시카고대회부터 여름스페셜올림픽을, 77년 미국 콜로라도주 스팀보트스프링스대회부터 겨울스페셜올림픽을 각각 열고 있다.

88년 서울올림픽 직후 개최됐던 제8회 여름패럴림픽은 새로운 전통을 만든 뜻깊은 대회로 기억된다. 여름올림픽 개최 도시에서, 올림픽 폐막 직후, 올림픽 시설을 그대로 활용해 패럴림픽이 열리는 전통이다. 이로써 올림픽과 패럴림픽은 비로소 명실공히 일심동체가 됐다. 그 전에는 1차(로마), 2차(도쿄)를 제외하고는 여름올림픽 개최도시가 아닌 텔아비브·하이델베르크·토론토·아른헴 등 다른 도시에서 열렸다. 심지어 84년에는 스토크맨더빌과 뉴욕에서 나눠서 개최되기도 했다.

한국이 겨울·여름올림픽을 모두 개최했다는 사실은 자랑스럽다. 여기에 더해 겨울·여름패럴림픽과 2013년 겨울스페셜올림픽까지 치룬 나라라는 사실은 전 세계에 한국의 이름을 더욱 빛내고 있다. 만일 한국이 장래에 여름스페셜올림픽과 겨울·여름데플림픽까지 유치해 장애인 국제스포츠 행사 그램드슬램을 달성한다면 어떨까. 한국은 차별과 편견이 없이 모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살도록 돕고 그들과 함께하는 인간미의 나라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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